번개를 맞아 망해버린 꾸루 지방에서 어린 아내와 함께 짜끄라야나 우샤쓰띠가 코끼리를 키우는 이브야 마을에 아주 궁핍하게 머물고 있었다. 그는 찬양하는 자리에서 제사장에 강림한 신을 싸마 찬가로 찬양하고 있는 제관들 가까이 다가앉았다. 그리고 그는 싸마 찬가의 서곡을 노래하는 부제에게 말했다.
"싸마 찬가의 서곡을 노래하는 부제여, 그대가 만일 싸마 찬가의 서곡에 따라 깃든 신을 모르면서 서곡을 노래하면, 그대의 머리는 분명히 떨어질 것이오!"
...
그러자 그들은 모두 멈추고 말없이 가만히 앉았다
<#찬도그야_우파니샤드> 중 (임근동 역)
손쉬운 비판은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산물이다. 킨제이 고만 Carol Kinsey Goman 은 "우리의 논리적 사고는 종종 우리의 감정적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Our logical processes are often only rational justifications for emotional decisions)"고 경고한다. 타인의 생각, 특히 종교를 비판함에 있어서 그것 즉, 종교를 갖는 것은 무지몽매한 일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은유나 신화적 기술 mythological description 神話的 記述 로부터 탈피하지 못하는 경향은 분명히 많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종교나 어떠한 신비추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기술과 과학에서 조차 사람들은 이러한 신화적 기술이나 맹신의 경향을 자주 보인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던 사실 중 하나가 어린 날 읽으라고 강요당하던 소위 '위인전'의 구성에 문제가 많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있다. 아이들이 읽는 위인전이야 말로 신화적 세계이며, 사실적 결론과는 매우 동떨어진 세계다. 물론 '동심파괴'라는 신조어가 존재하는 것처럼, 무작정 그들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모자란 사람들이었고,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았으며, 많은 부분들이 각색되고 신화화되었는지를 무작정 지적한다면 우리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융이나 프로이트를 굳이 운운(云云)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이 얼마나 신화적 기술과 밀접한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냉정한 판단을 내려보자면, 지난 기억에 대한 구술(口述, oral statement)치고 신화적이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될까? 오죽하면 자신들의 지난 이야기를 늘어 놓는 행위를 싸잡아 "구라를 늘어놓는다"고 표현하지 않는가?
이렇듯, 우리의 삶 전체가 신화적 세계에 빠져 허우적 거림을 망각한채,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종교적 행위를 싸잡아 헐뜯는 것은 매우 문제가 많은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신화적인 기술, 결국 '구라쟁이'가 되지 않을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사진도 전체의 부분일 수 밖에 없듯이,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기술 description 방법은 결국에 전체의 일부일 수 밖에 없고, 때문에 가능한한 많은 정보를 담아내기 위한 기술 technique 이 요구되며, 이러한 실존적 한계 상황은 결국 신화적 기술 description 이라는 기술 technique 이 요구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계몽한 자로 여겨 타인의 몽매함을 탓하는 것은 결국 어리석은 자의 무지에 불과하며 그 옛날 베다 Veda 를 구성했던 리시 rishi 들의 잔혹한 검증 과정처럼 알지 못하고 말하는 자는 머리를 쳐서 죽음을 받게 되는 것이다. 3,000여년 전에는 사람의 머리를 쳐서 죽였다면, 이제는 몽매함에서 깨어날 수 없다는 죽음(मृत) 속에서 자신의 머리가 떨어졌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그 형벌이 되는 것 뿐이다.
감로(甘露 - अमृत)란 이치에 맞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원리와 균형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사람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실존적 한계에 대한 이해와 인정, 그리고 거기에서 영영 닿을 수 없는 불가지(不可知 inscrutability)의 영역이 존재함을 겸손하게 수용함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이 고귀한 제자에게 누군가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고 하고,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고 말한다면, 그는 머리가 터져 버릴지 모른다." <#상윳타_니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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