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한 구상을 마무리, 정리하였던 약 한 달 전부터 촬영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적합한 장소를 찾아 지난 일주일 동안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지난 2019년 동아시아 사진미디어 페스티벌 대표작가전에 출품했던 <응시 Gazing> 연작의 '본작'을 만드는 작업이다.
나름대로 여러 장소들을 돌아다녔으나 원하는 느낌이 나오는 곳은 굉장히 의외인 곳에 있었다. 사실 이렇게 해변가에서 여러차례의 시도를 해보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곳인데, 송도의 솔찬공원, 과거 인천대교 공사를 위한 작업이 진행되던 장소를 공원화한, LNG기지, 플랜트들이 바다 위에 가득한 그 장소였다. 처음 구상했던 작업과 맞아야 하는 것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카메라의 위치 중에서도 '높이'다. 수면에서 8m 이상 올라갈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는 위치를 발견하고 바로 슈팅에 들어갔고, 그렇게 얻어진 사진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몇 차례 더 작업을 진행했고, 의도대로 촬영할 수 있는 장소임을 확인했다. 이제 몇 장의 사진만 더 얻으면 된다. 그러나 이 작업은 한 번에 66분의 노출을 해야하는 작업이고, 하루에 한 장 이상 찍을 수 없다.
전환점의 미학
한 시간이면 이렇게 밝기가 변한다. 일전에 산책 중 차이나타운 삼국지 벽화거리에 있는 '감로사(甘露寺)' 그림을 보고 감로(甘露 - अमृत)에 대한 단상을 끄적인 것이 있다. 그 감로(甘露 - अमृत, amṛta)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 시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해가 뜰 때,
해가 질 때,
사람이 태어날 때,
사람이 죽을 때 등등
무엇인가의 상태가 A에서 B로 변한다고 보았던 시간에 죽음(मृत, amṛta = dead, expired, defunct)을 피한다는 의미다.
그러한 의미에서 므리따 mṛta 의 부정형 아므리따 amṛta 즉, 감로(甘露 - अमृत, amṛta)라 했던 것이다. 여기서 죽음이란 이치에 맞게, 삼라만상이 돌아가도록 만들지 못한 상태다. 그러니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것이기에 그것은 곧 세상의 질서는 살아있다는 의미다.
죽음을 피한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의 이치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야즈냐(Yajna, यज्ञ, yajñá)를 발전시킨 사람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초창기의 대부분 인류의 모든 제식이 쉽게 식량을 얻고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들의 조상을 기리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점차 확대되고 깊어지며 우주의 운행 원리에 대한 이해를 향해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 신의 입자(The Higgs boson)를 발견하고, 우주의 생성 원리를 시뮬레이션한다. 우리 동아시아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한데, 실상 과학이란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서 그 원리를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다. 기술을 뒷받침하는 원리인 과학이라는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과학은 종교나 명상, 철학 혹은 도를 닦는 행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나는 이 전환되는 순간(?), 아니 시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는데, 그 과정을 반복적으로 사진에 담아보고 있다. 시각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기에 생각보다 많은 반복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이 '전환의 순간 the moment of transition'을 통해 표현하는 사진 속에는 가만히 바라보는 행위인 '응시'를 통해 우리 생각의 실체, 그 생각의 기원으로 천천히 다가서 보려는 나름의 노력이다.
연작의 작업과 구성은 상반기 중으로 마무리 해 볼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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