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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Bhang, Youngmoon

물의 감각 /w Music Group SE:UM /노트 #1

공연과의 협업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보냈던 작품에는 표제가 <空 suññatā>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이 <空 suññatā>이라는 주제가 특히 '기획'이라는 프로세스를 거치기에 편안하지 않다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역으로 제안을 받은 것은 <물의 감각>이라는 표제와 '물'을 소재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협업 collaboration 이라는 것이 어떠한 아이디어나 방법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게 되면 더 이상 협업이 아니게 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렇게 조금 다른 접근 방법을 통해 어떠한 결과물이 나올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도 작동했다. 기획 공연 일정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나는 <空 suññatā>과 <물>의 상관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용과 영향, 해석과 재해석, 맥락의 발견


'물'을 소재로 <물의 감각>이라는 표제를 다시 떠올렸을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또한 저항감 없이 떠오른 문장이 하나 있었다. '老子' 8장에 등장하는 '上善若水'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혹은 "최상의 덕목은 물과 같다" 같은 표현으로 번역된다. 이 8장은 "夫唯不爭, 故無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 된다. 즉, "오로지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노자가 '上善' 즉, 지고의 덕을 물[水]에 비유하는 까닭은 수용과 영향사적으로 볼 때 그의 사상이 고대 중국 夏나라 문화로부터 받은 영향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수용과 영향 그리고 '해석'과 '재해석' 여기에 더불어 '맥락'이라는 측면을 모두 생각해보는 까닭은 바로 <물의 감각>이라는 작업이 이러한 과정들 - 수용과 영향, 해석, 재해석, 맥락 - 을 거치기에 그렇다. 이것은 각종 크로스오버, 문화교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방법론이며, 어떠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다.


나는 이러한 점들을 두고 처음 내가 생각했던 <空 suññatā>가 뮤지션들에 의해서 <물의 감각>으로 해석되는 과정을 나름대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 중국과 고대 근동의 사상과 서사들


문화적으로 중국의 고대 국가 가운데 周나라가 하늘[天]을 숭배하는 문화에 있었다면, 夏나라는 물[水]을 숭배하는 문화가 있었다. 시간과 공간적으로 조금 거리를 두어 고대 근동으로 가보면 이집트를 비롯한 서부지역은 태양을, 동부 지역은 달을 숭배하는 문화가 자리한다.


老子의 有無 즉, 道와 고대 근동에서 천체와 신의 병치를 비교해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다. 특히, 근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이 두 사상 - 노자의 道와 고대 근동 종교들의 창조 이야기 - 들을 우주론적 관점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맥락'이다. 즉,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른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면 노자의 道나 고대 근동의 창조 이야기들은 우주론과는 큰 연관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사상들에서는 흥미로운 유사점이 발견된다.

有無에 관한 관점에 있어서 老子가 보고 있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본질 혹은 본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실체와 그것의 用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道를 설명하는 표현이 수레바퀴(11장), 통나무(樸, 28장, 32장)와 같은 은유를 사용한다는 점과도 관계가 있다. 有에 사물성이 無에 用이 있고 이것은 작게는 작은 물질이나 하나의 사물, 조금 크게는 계(system)에서 공존하는 것들이다.


有無의 문제를 우주론적으로, 어떤 근원적 질서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前漢 시대 황로학적 영향이나 위진시대 이후 玄學적 관점으로 대표적으로는 <회남자>와 '왕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추정 가능한 생몰연대로 볼 때,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이 老子의 해석의 중심에 두고 있는 '왕필'은 거의 800년 가까운 시간적 거리가 있다.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을 놓고 보면, 현대를 사는 우리가 그들을 '옛날 중국 사람'이라는 범주로 묶어 노자에 대한 왕필의 해석을 바라본다면 이것은 정말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던 고려시대의 사람과 현대 한국인은 사실상 언어가 다르다. 아무리 옛 이야기라고 해도 800년이면 굉장히 많은 것이 변한다.


이는 고대 근동 문헌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알 수 있다. 구약성경도 고층기와 바빌론 유수 이후, 페르시아의 영향를 받은 시대와 헬레니즘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시대 모두가 굉장히 다른 어법을 사용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관성을 전제로 한국어로 번역된 문헌으로 보면, 생성 연대를 보면 최소 수 백 년에서 천 년 이상의 간극이 하나의 문헌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같은 단어라도 용례가 다르며, 문화적으로 매우 상이한 측면이 있음을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민수기, 스가랴, 역대기는 같은 단어도 굉장히 다르게 사용하는 문서들이다.


고대 근동 문헌들, 특히 구약성경의 <창세기>와 같은 문헌을 '우주론적'으로 해석하는 경향도 사실상 페르시아와 헬레니즘 영향 이후의 이야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초기 인류의 정착 문명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농사'와 관련된 일정은 공적 의례생활을 결정하게 된다. 사제 혹은 왕이 각종 의식, 수확제, 풍년기원제 등을 거창한 제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구획이 점차 분명해지는 시대적 상황, 이를테면 수메르의 우루크 같은 도시들은 인구 5만에 가까운 거대한 도시 국가를 이루기 시작한다. 이러한 국가화는 한 공간에 집중된 인력이 필요하고, 세금과 곡물을 관리하기 위해서 문자가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들을 성곽 안에 머물게 하는 가장 설득력이 강한 당위성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당시까지 인류가 꽤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던 '조상과의 관계성 속에서 성립하는 토지에 대한 소유권'으로부터 발전한 '神'이라는 관념이었다.


神 관념은 다양하게 발전하는데, 천체라는 실질적인 '대상'은 그것이 어떠한 법칙에 따라 주기적이고 안정된 운동을 보여준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 고대인들에게 '천체'는 우주 안에서 질서를 이루고 그것을 통제하는 어떠한 힘을 생각하게 되는데, 바로 '천체'를 물질적 대상으로, 질서정연한 기능은 '신'으로 표현된다고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태양과 태양신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확인된다"(F. Rochberg). 우주의 구성은 기능을 매개로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어떠한 우주론적, 존재론적 가치보다는 질서와 권위가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이것은 결국 고대 근동의 정치학이다. 노자의 "道"가 "有無相生"을, 그것에 대한 이해가 無爲라는 통치 방식을 향하는 것이라면, 고대 근동의 현상세계와 신들에 의한 운영은 국가가 유지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위한 것이었다. 결국 수많은 현대의 지식인들은 고대 근동의 정치학과 고대 중국의 정치학을 놓고 "태초에, 우주의 기원이 어쩌고"하는데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6천년 뒤, 언어가 바뀌고 여차저차 파편화된 기록들 가운데 21세기 초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정강정책을 놓고 우주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라는 가정하에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사람들을 상상해보자.



<空 suññatā>과 '물'로 묘사되는 지향점의 유사성

고대 중국과 고대 근동의 사상과 서사들을 먼저 적어 본 까닭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할 때 이미 현대인의 관점에서 초점이 매우 크게 나간 방식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노자의 有無를 논할 때는 실체와 기능에 관한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본래 맥락에 훨씬 가까울 수 있다.


老子 8장에서 물[水]로 묘사되는 "위무위 爲無爲"의 형상은 곧 그것이 道에 가깝다는 것을 말해주고, 그렇기 때문에 다툼이 없어 허물이 없게 된다는 결론을 향해 간다. 그리고 "위무위 爲無爲"를 가능하게 하려면 본질, 본성과 같은 존재론적 관점과 유사해지는 "可道"의 사고방식은 "非常道"임을 알고 실상의 운동성을 이해하지 못한 닫힌 생각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즉, 언어적 격리와 구분, 어떤 특정화와 개념화에 의해 대상을 정의하는 행위는 결국 '다툼'의 원인이 될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불교의 <空 suññatā>과 노자의 "물[水]"을 연결할 수 있는 접점이 생긴다. 法(dhamma, Dharma)은 모든 현상의 평등함이며, 발생하는 방법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갖는다. 그것들에 우선순위와 가치평가를 두는 것이 바로 중생(衆生)들의 삶이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음"이라는 연기(緣起)라는 法을 이해하고 있는 입장이라면 그러한 가치평가를 위해 다툼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것이 '涅槃'에 관한 가장 중요한 이해이며, 수많은 불교 초기경전들은 이것을 가리키고 있다.


초기 경전보다 훨씬 후대에 성립하나, 독트린 논쟁에 빠져 개념화의 증대라는 잘못된 길로 빠져버린 불교의 길을 되찾아 가기 위한 운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금강경>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a-samyak-sambodhi)의 가르침을 청하는 이가 '수보리(須菩提)'이며, 그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해공제일(解空第一) 즉, <空 suññatā>을 가장 깊이 깨우친 사람이다. 시대적으로 앞선 초기경전에서 붓다의 주된 제자들을 묘사할 때 이 '수보리'를 표현하는 다른 수식어는 무쟁삼매(無諍三昧)인데, <앙굿따라 니까야> 초반에 '수보리'로 음역하는 수부띠(Subhūti)를 "다툼이 없이 거하는 것에 있어 제일인 수부띠(araṇavihārīnaṃ yadidaṃ Subhūti - among those who dwell without conflict is Subhūti)로 언급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즉, 空에 대한 이해는 무쟁삼매(無諍三昧)로 나타난다.


결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까닭은 노트 중반부에 나름 상세히 적어두었다.

물[水] - 上善 - 不爭
공(空 suññatā) - 無諍

• 上善은 물[水]과 같다. 
	○ 그것은 "오로지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는 것 夫唯不爭, 故無尤"이다.
• <空 suññatā>의 이치를 깊이 깨달은 결과는 "다툼이 없이 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 해공제일(解空第一)은 무쟁삼매(無諍三昧)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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