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bread that came down from heaven.” (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ὁ καταβὰς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요한복음 John 6:41)
인용(quote)이라는 점은 같지만, 우리말 개역개정에는 완전히 제 3자가 옮긴 문체로 적혀있고, 영어나 그리스어로는 요한복음의 그 유명한 "I AM(ἐγώ εἰμί)" 패턴으로 나오는 문장이다. 'I am'으로 대표되는 이 표현은 인도유럽조어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인도유럽어족 언어에서는 매우 오래된, 문법적으로도 아주 핵심적인 표현이다. 직역을 해서 옮기면 '나는 존재한다'라고 번역될 것이다. 문장을 번역할 때 'I am'이라고 하면 '나는~'이라는 식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말과 영어, 인도유럽어가 얼마나 먼 언어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인도유럽어들에서는 이러한 주어와 동사 뒤에 술부가 나오니 '이러한 양태로' 나는 존재한다는 표현이 될 것이다. 바로 이렇게 나(I)에 대해 to be로 기술하는 이런 식의 구조가 바로 인도유럽어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우리말과는 아주 다르다.
존재, 은유 그리고 상징체계가 공존하는 문장
“I am the bread that came down from heaven.” (John 6:41) (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ὁ καταβὰς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어느 날, 이 짧은 문장 속에
'나는 I AM'이라는 실존적 표현과
'빵 bread'라는 은유적 표현과
'하늘 heaven οὐρανός'이라는 상징체계가
한 문장 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문득 보였다.
그리스어 하늘(우라노스)은 현대영어의 '소변을 보다 to urinate'와 어원이 같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우스워 보이지만, 인도유럽조어나 산스크리트어와 비교해보면 황당한 소리는 아니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때쯤 되면 이 '하늘'이 꽤나 추상적인 개념을 갖춘 말로 발전한다. 나의 느낌은 이 우라노스(οὐρανός)는 기본적으로 '닫혀진 공간'의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구어(口語)는 '아람어'로 알려져 있는데 앗시리아 제국 이후로 공용어로 계속 사용된 언어로 본다. 수메르, 아카드 시절부터 문명이 발달한 지역들은 기본적으로 2개 언어는 사용하는게 인류의 전통이었다(외국어 공부란 5천년도 넘은 전통이다). 불교에 대한 이해도 이러한 기록과 전승과정을 모르면 제대로 메시지를 읽어낼 수 없다. 그만큼 오래된 경전을 읽는다는 것, 지금과 다른 시대, 다른 공간, 다른 문화의 언어에서 메시지를 읽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개 언어라는 의미는, 아람어를 당시 헬라어 즉, 그리스어로 옮겨적었기 때문에 중요하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 이후로 현재의 이란 지역까지 헬레니즘이 들어가 실질적으로 현재 우리가 중동으로 보는 지역들이 헬레니즘 철학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도 바울(바오로, Paul) 같은 인물의 존재는 사실 그리 별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당시 예수님의 구어가 아람어였다면, 5경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를 할 줄 알았어야 했고, 그것을 헬라어로 기록했으니 제자들 중 다수가 3가지 언어가 가능한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못배우고, 찌질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 사회에서 3개 언어를 구사하고, 문장을 적을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성인이라 생각될 것이다.
앗시리아 이후로 변천이 있었다고는 해도 아람어로 분류가 가능한 언어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면 그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도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사고방식과 언어에서 나름의 체계가 있었고, 히브리어는 그것들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시도했던 문화의 언어라고 한다면, 헬라어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연역적, 추상적 사고를 리드해 온 문화의 언어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라고 선언하는 가운데에는 바로 "나"라는 존재론적 이해, "떡"이라는 은유의 활용 그리고 "하늘"이라는 고대인의 신성관이 한 문장 안으로 녹아든다. 셈어파 언어를 인도유럽어인 그리스어로 옮겨적은 문장이고, 문장 안에는 실존, 은유 그리고 상징체계가 공존하는 아주 짧지만 강력한 문장이다.
메시지의 변천, 반응체계의 이해는 곧 사진을 구상하는 능력과 직결
나는 이러한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의미와 상징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반응체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매체이론가 플루서 Vilém Flusser 의 설명을 조금만 살펴보면 이런 메시지 전달의 과정이 사진의 구상에서 왜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소박하고 비개념적인 어떠한 사진 찍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은 개념을 영상화한 것이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naïve, non-conceptual photography. A photograph is an image of concepts. 사진을 채널 속으로 분배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기계적인 분배가 아니라, 오히려 코드화라는 하나의 과정이다. 즉 분배장치는 사진 속으로 침투하여, 사진의 수용에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the division of photographs into channels is in no way simply a mechanical process but rather an encoding one: The distribution apparatuses impregnate the photograph with the decisive significance for its reception.
메시지의 전달 과정, 특별히 그 변천에 대한 이해와 반응체계를 읽어내고, 일으키는 번역에 대한 이해는 어떠한 사진을 담아내는 능력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와 같은 문장을 곱씹어보는 과정을 통해 그리고 이 짧은 문장 속에 담겨진 소위 딥-스트럭처 deep-structure 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매우 강력한 사진구상의 도구, 생각의 도구를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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