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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Bhang, Youngmoon

사진작가 방영문 개인전 <凝視, 空의 感覺> -온라인 도슨트 #7


Contemplative Contemplation - the sense of suññata


<잠김 Immersion #3>, <잠김 Immersion #4>

2021 Inkjet print (printed 2021), 24 x 36 inch


<잠김 Immersion>은 4장의 사진으로 구성되는 연작

저는 이것을 '몰입의 장(The chapter of immersion (anupassati / anupassana))'이라고 적었습니다.

'몰입'이라는 말로 묶이는 4장의 사진은 각각 '잠김'이라는 표현으로 표제를 붙였습니다.

<잠김 immersion>은 변화와 변화 사이의 변화를 포착하고 표현해

시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 작업으로 공(空)의 감각(感覺)적 생각을 시각화한 작업입니다.

빠알리어 anupassati(아누빳사띠)는 ~을 따라 - 응시한다는 의미가 되며, 이에 대한 명사형으로 anupassana(아누빠사나)라는 표현을 씁니다. 저는 이러한 표현들을 ‘어떠한 개념화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고립적 혹은 분리의 특징을 갖는 언어의 추상적 특징에 의지하기보다 이완된 몰입을 통해 가능한한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빠알리어 표현을 덧붙인 것은, 일반적인 명상 문화에서 많이 쓰이는 사띠(sati - 알아차림 등으로 번역)보다 ‘상황을 따라가며 바라 본다’는 번역이 가능한 ‘아누빠사나’가 이 작업에 더 적합한 표현이라 생각되어 ‘사띠’보다는 ‘아누빳 사띠’ 혹은 ‘아누빠사나’라는 표현을 선택했다는 점을 조금 더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Yatonidānaṁ, bhikkhu, purisaṁ papañcasaññāsaṅkhā samudācaranti

(a person is beset by concepts of identity that emerge from the proliferation of perceptions)

(허상(虛像, 戱論)과 개념[想]과 정의(定意)가 사람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 이중표 번역 참조)


오늘날 우리의 성취는 이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들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현대물리학은 왜 우리의 직관과 맞지 않을까?


소위 '양자물리' 등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이 우리의 직관과 맞지 않는다", "그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많이 듣습니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저는 철학자 대니얼 데넷(Daniel Dennett)의 통찰에서 굉장히 중요한 단서를 얻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마도 진화된 뇌 구조에 의해 부과된 구문론적 제약들은 전지구적으로 globally 최적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언어가 최초로 진화되었을 시점에, 지구상 포유류 뇌의 신경 구조가 주어진 상태에서는 지구의 언어들이 그러한 구조적 형태를 지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데니얼 데넷


그때까지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준 수많은 요소들을 기반으로 더 강력한 집단 능력을 향상시킨 것이 언어 그리고 구문론적 구조를 갖추기 시작한 사고였다면, 그것은 당연히 생물의 생존에 적합하지 그것을 통해 감각기관으로는 관찰조차 불가능한 자연의 저변현상을 이해하는데에는 부적합한 도구라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되기도 합니다. 바닥에서 끝이 날카로운 돌을 주워 나의 의도대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갖는 수많은 도구들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지능도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가만히 앉아 한 가지에 집중하기 위해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나의 인식을 그리고 의식을 관찰하는 행동은 먼 옛날 가죽을 벗기기 위해 돌을 집어들었을 뿐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는 그 돌을 조각내고 다듬기 시작했다는 것과 유사한 것이기도 합니다.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 그리고 가능성(可能性, possibility)


외부 요소들 즉,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정보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주의 저변 원리가 우리의 직관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과 또한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잠김 immersion>이라 이름 붙인 4점의 작품들은 이러한 과정들을 저 나름대로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 피사체를 구성하는 간단한 요소들 - 물, 먹, 빛 - 은

  • 외부로 요인들 - 빛, 방향, 움직임 - 에 의해서 다채롭게 변합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모습 같습니다. 한정된 것들로 이루어지지만 여전히 상호작용과 더 다채로운 조합을 통해 가능성을 향해 간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지적 안정감을 위해서 유물론적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칫 우리 자신의 가치를 폄하할 위험이 있습니다. 역사적 맥락들과 그 사실들에 투영해 개념을 해체하는 작업은 우리가 취해야 할 것들조차 분해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불완전할 수 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가소성과 가능성이라는 열린 상태의 축복을 누립니다.


더불어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존재론적 고찰은 사실상 결론을 닫는다는 점에서 실상과는 매우 다른 기술(description)을 하게 되기에 저에게는 지양(止揚)되어야 하는 방식입니다.


우리 자신의 내적 상태가 매일 접하는 다양한 자극과 정보들과 더불어 변화하듯,

모든 개념은 네트워크 안에서 상호작용이라는 양분으로 자라납니다.


<잠김 immersion>은 변화와 변화 사이의 변화를 포착하고 표현해

시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 작업으로 공(空)의 감각(感覺)적 생각을 시각화한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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