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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Bhang, Youngmoon

금태섭 TV, 사진 읽어주는 남자 - 시각코드 이야기

작가노트 photographer's note:

  • 사진 한 장이 판도를 바꾸는 시대는 저물어간다.

  • 점차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일에 지나친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기본적인 작업의 수준을 높이고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승부수가 될 수 있는 상황과 메시지 그리고 사진을 찾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 과거에도 확률적으로 쉽지 않았던 이것 - 사진 한 장이 판도를 바꾸는 상황 - 은 앞으로 사진매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감에 따라 점점 더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되어 갈 것이다. 확률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 정치권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에 있어서 사진의 역할은 첫째, 시기적으로 적절한 시각화의 문제에 관한 것이며 둘째, 누적적인 데이터베이스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적절한 시각화는 다양한 일정과 그에 맞는 이미지 촬영이 주된 작업이 될 것이며, 누적적인 데이터베이스 역할은 그렇게 누적된 사진들을 종합하여 상황에 맞게 재배열 및 활용하는 것이다.


처음 이 사진 촬영 계획을 세운 것은 2017년 11월이었다. 수정해서 공유한 것이 1월, 당시에는 나름 낭만적인 분위기의 사진을 내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작업은 처음 의도와는 아주 많이 달라진다. 이 글은 그러한 변화와 관련한 시각적 표현에 관해 정리해 본 글이다.


개인적 공간을 공적 공간으로 확장해보기


금태섭 의원이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피해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미투 운동'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점을 부각시켜 피해자보다는 어떠한 정치적 세력을 비호(庇護, to protect)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정치 공작이나 유사한 시도는 어느 때나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그러한 측면들을 강조해 피해자들의 발언 자체를 왜곡된 시각으로 여기도록 유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발언들은 많은 이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는 동시에 반발을 사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는 복잡하기에 단순한 한두가지의 단순한 결론으로 매듭지을 수는 없다. 어느 시대, 어떠한 문제에 관해서 완벽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결론은 계속해서 변해가고, 우리가 가져야 하는 올바른 태도란 '지금까지의 결론은 이렇다'로 그 다음 방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최소화하고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적절한 대비를 세울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에 적합한 시대정신을 선택해야만 할 때가 있다. 이상론적으로 생각한다면 무한한 과정 중에 있는 중간 결론만을 취하고 언제나 최종 결론을 유보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것은 무력할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생물이 가진 지성의 기본은 표상, 시뮬레이션, 자기관찰로 자신의 욕구를 달성하는 것에 있다. 인간의 사회란 이러한 요소들의 집합체적 특징을 상당히 포함한다. 즉, '결론내기'란 삶은 물론 사회운영에서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공인 公人, a public figure


공인(公人, a public figure)은 결론을 내놓을 것과 그 책임을 질 것을 요구받는다. 특히 정치인은 중립적 가치만을 표방하며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이러한 점들 때문에 사실 오늘 우리는 상당히 심각한 극단주의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특정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히는 것보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公)이라는 글자의 의미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지사자설과 가차설이 있다. 지사자(指事字)은 갑골문의 형태를 빌어 이것이 물건을 공평하게 분할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며, 가차자 설은 추상적인 문자를 다른 글자에서 가져온 것이 되기 때문에 큰 정보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적어도 우리는 한자 형성에 관한 지사자설을 통해 이 글자가 '공평함'을 의미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영어의 public은 라틴어 pūblicus에서 온 것으로 본다. 중세 영어에서부터 확연히 보이는 이 단어는 중세 불어에서 왔으며 그 어원은 라틴어로 보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people)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글자들(단어들)은 기본적으로 공평함과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공인에게 요구되는 지성의 핵심은, 특별히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균형감각'에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種, species 의 기원


적절한 시대정신의 수용과 균형감각 그리고 결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공인에게 역할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시대정신이란 무엇인가? 타인에 대한 정죄와 이단심판 같은 태도 혹은 순혈주의일까? 결론이 명확한 길은 강렬한 성취감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고등동물 특히 인간처럼 언어와 지성을 가진 생물에게는 굉장히 강렬한 유혹이다. 나는 사람들이 극단주의에 심취하게 되는 까닭, 특별히 정치적 극단주의에 심취하게 되는 원인을 꽤나 '생리적인 이유'에서 찾는다. 뇌기능의 특징, 인류라는 종의 진화와 지성의 발달 과정, 그렇게 얻어진 언어 능력과 사회성 등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해 소위 '패거리 문화'를 만들고, 정치적 극단주의에 심취하기 쉽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분명 우리 자신 즉, 인간이라는 종의 발달과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본다면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진영의 분열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들이 얼마나 우리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당위성’을 근거로 너무나 쉽게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버리고 이단심판에 심취하는 중세 종교적 사고로 돌아간다. 자신의 문제가 될 때 너무나 쉽게 균형감각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쉽고, 이것은 강렬하다.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본능적 욕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가르침과는 달리 진리는 우리를 산산히 부숴버리기도 한다(But when you believe a lie for too long, the truth doesn't set you free. It tears you apart - <Altered Carbon>). 물론 그 부서짐의 끝에 자유의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큰 고통을 수반한다.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논리적 편견’을 깨는 것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다. 아니, 자신이 선택한 논리, 더 나아가서 때로는 '논리' 자체가 구조적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게 된다.



메시지의 시각화 시도하기


금태섭 의원과의 협업은 2017년 10월부터 진행했다. 그리고 이 시기 즈음하여 여당 국회의원이 현 정부여당에 지극히 유리할 수 있는 ‘미투 공작설’에 맞서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 그리고 현재 직면한 문제를 다루는 모습에서 그의 시선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에 떠오른 것이 천체망원경이었다.

이러한 '취미'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다. 흔히 사용하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사무실 공간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독서와 관찰이라는 취미의 방향성은 단순히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이것은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는 활동일 것이다.

말하자면,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정보의 수집 경향과 대상을 관찰하는 정보의 수집 경향은 의정활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게 사람을 보고, 사진을 찍고 또한 시각화를 하는 나의 직업적 결론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처음 촬영을 계획했던 상황과는 달라진 상황을 반영하여 수정한 작업을 계획했다.


지난 몇 년간 정치권의 사진 작업을 해오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문제를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과정’을 통해 올바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그러한 생각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앞서서 적어보았듯이, 때로는 논리 자체가 구조적 결함을 갖는다. 인간이라는 종이 지닌 지성의 발달 과정에서 얻어진 언어라는 강력한 도구는 근본적으로 생물 '종'의 생존기술이기 때문에 그렇다. 때문에 보편가치의 추구보다는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는 것 혹은 쉬운 결론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는 실수를 범한다.


또한 어떠한 편향 bias 의 발생은 매우 논리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미 논리적 역설(逆說, paradox)들에 관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언어를 사용해 어떠한 결론을 향해 가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들이 도처에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입맛에 맞는 결론들을 쉽게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불쾌함으로부터 벗어나 더 나은 느낌을 선호하는 경향을 갖는다. 우리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우리 뇌에 있는 해마(hippocampus)는 몇 가지 기억들과의 연결을 통해 어떠한 접점을 찾게 된다. 만일 이 새로운 것이 익숙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의 편도체(amygdala)를 자극해 불안정한 느낌을 주게 된다.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혐오감을 안기고, 따라서 이것들을 피하기 위해 애쓴다. 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We swerve from what feels bad to feels better. When something is new, our hippocampus finds few matching memories. It signals unfamiliarity to our amygdalae, which give us feelings of uncertainty. Uncertainty is an aversive state: we avoid it if we can. Psychologists can show this in experiments)."(Kevin Ashton)


인간의 지능이나 언어의 발달과정 등을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가 어째서 편향이나 논리적 결함을 가진 결론에 쉽게 빠지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생물이 가진 지성의 기본은 표상, 시뮬레이션, 자기관찰로 '지성'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생물로서 자신이 가진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발달한 것이 인간의 언어임을 전제로 생각해 볼 때, 생존 기술 이상의 의미를 갖는 언어의 사용과 그 확장이 여전히 우리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정은 의사결정의 열쇠를 쥐고 있다. 우리의 논리적 사고라는 것은 종종 우리의 감정적 결론에 대한 합리화에 종속되어 버린다. 대뇌변연계는 가치판단의 최전방에 있다. 이 대뇌변연계는 간혹 신체적 언어(body language) 신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이는 우리의 반응과 행동에 강한 영향을 끼친다(emotions are the key drivers in decision making. Our logical processes are often only rational justifications for emotional decisions…. The limbic brain is most responsible for value judgments (often based on emotional reactions to body language cues) that strongly influence our reactions and behaviours)."(Carol Kinsey Goman)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이미지 image 와 바디랭귀지 body language 의 중요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인물의 시각화는 바로 이러한 점과 굉장히 깊은 관계가 있다. 언어나 상징기호와는 조금 다르게 사진이나 동영상은 사실을 기본으로 하는 시각화 작업이다. 또한 이것은 '해석'을 수반한다.


잘 알려진 메러비언의 법칙 Albert Mehrabian's 7-38-55 Rule 은 물론 다양한 자료들이 메시지에서 '순수언어요소'가 전달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때문에 사진영상의 시각화는 '메시지'라는 가치로 볼 때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프로그래밍의 한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나,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일종의 직관적 인터페이스 intuitive interface 라고 볼 수도 있다. 프로그래밍은 자연적인 발달과정에서 인간이라는 종(種, species)에게 부여된 일종의 특징이 형성되어 온 과정을 프로그래밍이라고 본다면, 시각화를 통한 메시지 전달은 이 프로그램의 구조를 이해하고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조금 다른 관점을 빌려보자면, 운영체제 OS 위에 응용프로그램 application 을 설치하는 것과 유사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관점들을 놓고 볼 때 전략적이고 효과적인 시각화에는 어떠한 균형이 존재함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1. 익숙함을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되고,

  2. 통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3. 그것을 극복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전략이 있어야 하고,

  4.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활용한 표현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뇌와 지능의 발달 과정을 통해 우리가 편향에 빠지기 쉬운 특징을 지닌 '종'이라는 점을 이해했다면, 그보다 더 저변에 있는 층위에는 시각적 코드들로 작동하는 특징들이 있다. 이를테면, '손'을 보여주지 않는 자세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무례한 행동으로 치부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본능적 층위의 어떠한 '코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시각화와 거기에 활용되는 코드란 이러한 층위 즉, 언어적으로 잘 인식되지 않는 영역의 지능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매우 뛰어나다. 남성이 여성의 배와 허리를 자세히 보게 되는 것은 임신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본능적 행동이라는 점처럼 인간에게는 시각적으로 입력되면 반응하게 되는 몇 가지 보편적인 시각코드들이 존재한다.


인간의 지능 발달과정이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지능과 언어의 특징을 보여주고 그것이 소위 '편향'이나 쉬운 결론에 빠지기 쉬운 특징을 지녔다는 점을 이해했다면, 전환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그것을 활용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일깨우는 경각심으로 이용하는 동시에 말이다. 언어적 '프레임'을 짜는 것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특징에 호소하는 방식이라면, 영상의 시각코드는 조금 더 본능적인 층위에 있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 한 장이 판도를 바꾸는 시대는 저물어간다


사진 한 장이 판도를 바꾼다는 일종의 기회주의적 통념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사진은 이제 가장 흔한 데이터가 되었다. 인공지능(기계지능) 개발 분야에서도 사진 데이터베이스의 폭발적인 증가가 그 속도를 더해주고 있다고 보는데,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소셜미디어 Social Media 는 가장 대표적인 사진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만큼 이제 사진은 우리 일상에서 가장 흔한 매체, 데이터가 되어 버렸다. 본능을 향한 호소라고는 해도 대조할 수 있는 데이터가 넘쳐나는 상황이라면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고, 특정한 방식에 굳이 얽매이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선택의 범위가 넓은 상황이라면 특정한 것만을 선택해 스스로를 만족시킬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사진, 영상을 통한 시각코드의 이용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석으로 여겨졌던, 한마디로 효과가 확실했던 방식들도 이제는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이 점점 약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 한 장이 판도를 바꾸는 시대는 저물어간다. 점차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일에 지나친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기본적인 작업의 수준을 높이고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승부수가 될 수 있는 상황과 메시지 그리고 사진을 찾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과거에도 확률적으로 쉽지 않았던 이것은 앞으로 사진매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감에 따라 점점 더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되어 갈 것이다. 확률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이제 정치권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에 있어서 사진의 역할은 첫째, 시기적으로 적절한 시각화의 문제에 관한 것이며 둘째, 누적적인 데이터베이스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적절한 시각화는 다양한 일정과 그에 맞는 이미지 촬영이 주된 작업이 될 것이며, 누적적인 데이터베이스 역할은 그렇게 누적된 사진들을 종합하여 상황에 맞게 재배열 및 활용하는 것이다.


작업한 사진에 관해서는 영상을 통해 설명해 두었다



추가적인 기재 additional notes


나는 이 영상 속에서 ‘바라보다’라는 행위를 더 중심에 두고 싶었다. 유튜브 콘텐츠 최종본은 미국의 두 전 대통령인 케네디와 오바마의 사진과 나란히 놓는 부분에 더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의 좌상단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앙각(仰角, a frog's eye view)으로 촬영하는 것은

리더쉽을 표현하는 진부한 시각코드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내가 쓴 원고에는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의 좌상단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앙각(仰角, a frog's eye view)으로 촬영하는 것은 리더쉽을 표현하는 정말 진부한 시각코드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 내용은 편집과정에서 빠졌다. 진부한 방식은 그만큼 일반적인 방식이라는 의미다. 과거 오바마 전 대통령 팀의 작업을 보면 정석 외에도 정석을 상당히 벗어나는 동시에 매우 효과적인 방식을 활용했음에 감탄스러울 때가 많았다. 케빈 애쉬턴(Kevin Ashton)의 설명처럼, 익숙하지 않은 상황은 불쾌감을 준다. 이것은 우리 뇌에 있는 해마와 편도체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심리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정치인들의 사진이 시기별로 거의 비슷비슷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케빈 애쉬턴의 관점을 빌리면 두 가지로 정리가 가능하다. 하나는 이처럼 우리 뇌의 생리적 특징 때문이며, 또 다른 하나는 생각이라는 것은 도약을 하기 보다는 단계를 밟아 발전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 비슷한 그룹들은 의사소통을 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위해서는 누적적인 데이터베이스와 분석툴이 요구된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작업을 하며 느낀 것은 이와 관련하여 정치권에는 누적적인 데이터베이스는 '드물게' 존재하지만, 그러한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적절한 분석도구는 찾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간혹 매스미디어 홍보와 관련한 교과서적인 텍스트들을 찾는 것 이상의 분석도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정치 아젠더 agenda 라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선형 helix 으로 순환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서로 상대방의 안건들을 자신들이 주장하게 되는 순환적인 교차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만큼 고정적이지 않고 상황은 지속적으로 변한다. 따라서 시기적절한 시각화는 물론, 누적된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분석도구 그리고 이것들을 가능하게 할 누적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 과정에 대한 중요성 인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현실적 국회의원 300명의 홍보는 대부분 전문적인 팀이 아닌 소양이 있는 보좌진의 추가 업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같은 우연과 순간에 내린 축복의 산물은 있어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동시에 충실한 메시지를 담기는 어려운 것이다.

케네디와 닉슨의 TV 토론으로 정치 메시지의 시각코드에 관한 관심이 생겨난 것은 1960년부터이다. 반세기가 넘은 인식이기에 지금은 인물과 상황에 대한 엄청나게 많은 분석들이 있다. 지난 6년간 나름대로 작업하고 공부하며 고민했던 부분들이 있고, 이제 한 번은 정리해 볼 시점이라 여겨지기에 이 <사진 읽어주는 남자>는 그러한 내용들을 공유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고 다양한 사진과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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