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해 본 작업이었다. 하나의 사진 속에 하나의 순간만을 넣는 것이 아니라 여러 순간들을 넣어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다. 사실 이러한 접근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그리스 신화, 성화 등을 주제로 그리는 수많은 화가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상당히 오래된 접근 방법이라는 뜻이다. 또한 사진의 탄생과 더불어 회화(painting)에 대한 낮은 자존감은 초기 사진작가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회화의 구도를 구현하도록 만들었으며, 당대 대표적인 오스카 구스타프 레일란더 Oscar Gustave Rejlander 와 같은 작가의 합성 작품은 지금 보아도 그 완성도가 대단히 높다.
처음 이러한 방식을 시도하게 된 까닭은 아주 단순했다. 국회 본청 작업을 하게 된 2016년 6월의 어느 날, 취재증을 발급받아 들어간 국회 본청은 생각보다 바닥부터 천장의 거리가 멀었다. 나는 35mm 보다 넓은 화각의 렌즈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전체를 기술할 수 있는 사진 한 장을 내놓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파노라마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능을 사용하는 것은 사진의 색감을 조정하는데 불편함이 따를 것이 생각되어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붙이기로 하였다.
처음에 이어붙인 사진들을 보다가 한 가지 실수 한 사실을 깨달았다. 좌측과 우측 스크린에 비춰지는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의 입모양이 다른 것이었다. 나는 수정 작업에 들어갔고 양 스크린에 입모양이 같은 사진을 골랐다. 그리고 그렇게 사진은 공개되었다.
생각을 바꿔보다
나 자신의 생각이 굳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발상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앞서서 적은 것처럼 이것 자체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도해봤고, 이제는 더 이상 기술적으로 어려운 접근 방식도 아니다. 이미 수 백 년도 더 전에 유럽의 화가들이 시도해 본 방식이고, 차라리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벽화들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기술하는 한 장의 사진은 인류의 예술역사와 함께 시작했다고 보는 것도 맞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 여건에 맞게 그러한 접근 방법을 수용한 것 뿐이다.
이 사진은 안철수 후보의 플리커(ahnphoto.kr)에 공개되어 있다. 촬영은 70mm 렌즈로 진행되었다. 카메라를 세로로 거치하고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시작하여 국회 헌정관 뒤쪽까지 천천히 나누어 찍었다. 파노라마 작업에서 사용되는 패럴랙스 포인트의 간단한 설정만 제대로 해두면 몇 가지 릭 rig 을 가지고 아주 흥미로운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카메라를 회전 시키는 동안 나름 시간이 상당히 흐른다. 때문에 이 사진은 발언자부터 뒤쪽 사람들까지 시간 차이가 벌어진다. 한 장 속에 많은 시간대의 순간들이 포함되는 셈이다. 특별히 떠오르는 용어가 없어 타임랩스 time-lapse 라는 흔한 표현을 사용했다. 혹시 누군가 더 적절한 표현이 있다면 추천해주시기 바란다.
2017년 4월 12일,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의 일정이다. 무대 뒤쪽에 앉은 몇몇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단 뒤, 무대 벽에 기대섰다. 6장의 사진으로 좌우 밸런스를 맞춰봤다. 상당히 러프 rough 한 느낌이 마음에 든다.
접근방법은 다양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시도해보기 시작한 작업이 사소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씩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이러한 작업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진행했다는 정도를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 방식을 문제 삼지 않아주신 안철수 후보께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