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을 의미하는 단어 'video'는 '보다'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vidē 에서 온 표현으로 뒤따는는 -o 는 'audio'를 의미한다. 'audio' 또한 라틴어 'audī-'에서 온 표현이다. 이는 '듣다'라는 의미다. 즉, video 라는 단어 자체는 보다와 듣다가 합쳐진 단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 프로젝트는 동영상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그렇게 할 것이나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 프로젝트의 '#videography' 분류는 단순히 이 작업을 위해 '동영상 video'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간적 신호' 즉, 청각 매체를 시각화 한다는 점에서 'video'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 저변에 깔린 생각이다. 나의 프로젝트는 거의 대부분 '언어' 그리고 '시간'(시대)이라는 두 가지 맥락을 중심으로 잡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세상의 원리의 핵심에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가 있다는 관점이다.
기술적 구현
작업은 소리에 대한 시각화에 그 중점이 있다. 소리의 시각화 방향은 예전부터 다양하 방법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표음문자 #phonogram 가 있을 것이다. 축음기의 등장과 음악의 '저장'이 가능해지면서 소리의 재현과 관련한 요소들을 시각화 할 방법들이 생겨났다. 오디오, 앰프 등에 달려 있는 각종 미터들(계기판들)이 대표적이다. 기술적으로 조금 더 다양해지면 스펙트럼의 시각화, 주파수별 시각화가 더욱 세부적으로 가능해진다.
이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 프로젝트는 스펙트럼을 시각화하여 한 장의 사진처럼 만드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는 38분 가량의 음성 신호를 시각화하였고, 이 <Blackbird>의 경우는 2분 18초의 음악을 시각화했다.
사진적 관점
사진적 관점이란 무엇일까? 실상 디지털 사진은 그 자체로 약호 code 가 존재하지 않는 매체적 돌연변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코드 덩어리가 되었다. 사진과 컴퓨터 그래픽 사이에 그어져 있는 경계선이란 결국 그 이미지가 사실을 담는 과정을 거쳤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관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 프로젝트는 매우 사진적 프로세스를 갖는다. 즉, 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려넣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음원 sound source 으로부터 그 상(image)을 얻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기 때문이다.
The Beatles' Blackbird
"Since composing "Blackbird" in 1968, McCartney has given various statements regarding both his inspiration for the song and its meaning. In one of these scenarios, he has said he was inspired by hearing the call of a blackbird one morning when the Beatles were studying Transcendental Meditation in Rishikesh, India. In another, he recalls writing it in Scotland as a response to racial tensions escalating in the United States during the spring of 1968."
- WIKIPEDIA
리시케시 수행 이후에 비틀즈가 연속적으로 히트 앨범을 발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 인도의 신비주의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지만, 사실 더욱 현실적인 분석은 비틀즈가 소위 "British Invasion"이라 불리우는 문화 현상의 중심에서 안도하지 않고 성공적인 미국투어 이후에 집중적으로 음악을 만들어 내는 노력을 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리시케시에서의 시간은 이후 매우 좋지 않은 마무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Blackbird>는 1968년 미국의 상황을 반영한 곡이라는데 초점을 두었다. 실상은 오늘도 마찬가지다. 일설에 의하면 <Blackbird>는 미국의 흑인 여성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계가 감염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오늘 극단주의와 인종차별은 여전히 미국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더욱 씁쓸한 사실은 미국 내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공격에 가담하고 있는 상당수는 흑인이라는 사실이다.
억압을 받는다고 해서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케네스 베일리 Kenneth E. Bailey 의 해석 하나를 빌어 이 문제에 대해 적고자 한다.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의 탄생과 함께 그의 역할에 대한 예언이 등장한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것이다. 이 문장은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기독교 신학이 늘상 강조하는 '원죄'의 문제다. 이 부분은 구체적으로 논할 만한 것이 별로 없으니 넘어간다. 오히려 이 부분은 케네스 베일리처럼 당시 상황적 맥락에서 이해해보면 더 큰 의미로 와닿는다.
마태복음은 매우 유대인 중심으로 쓰여진 복음서다. '자기 백성'은 로마의 억압을 받는 유대인들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수난사는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카데쉬 전투 이후 끊임 없이 일어난 일이다. 때문에 그들의 신학이 정립되는 과정을 보면 주변 제국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실천 강령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나름 자세히 적어 둔 것이 있다: https://bhangyoungmoon.tistory.com/entry/구약성경과-조로아스터교아베스타 [The Gateway - photographer's notes]
복음서 전반을 보면 예수의 가르침의 중심에는 로마로부터의 독립, 그들에 대한 적대적 표현들이 아니라 '억압 받고', '차별 받는' 유대인들의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자로부터 억압을 받는다는 사실이 그들의 문제에 대한 면죄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사회문제와 입장 차이 등에 지나치게 큰 무게를 두고 되려 집중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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